<新 가족의 탄생 #4>
닮은 듯 다른, 믿음 안의 사랑 – 퀴어 커플 ‘도플+갱어’ 이야기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2006년 5월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로부터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2006년 가족구성권연구모임부터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에 이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의 출범, 그리고 최근 동성혼 불복 소송에 따른 심리까지 험난하지만 다부지게 계속돼 왔죠.
그럼에도 ‘종북게이’, ‘골수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혐오가 판치는 게 현실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원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은 좌초됐으며, 한 지자체의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가시화를 통한 존재 드러내기와 당연한 권리 주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에 친구사이에서는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요구에 앞장서는 가구넷과 함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당사자 연재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4번째 이야기는 이름처럼 서로 닮았으면서도 많이 다른 모습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며 함께 살아가는 ‘도플+갱어’ 커플의 알콩달콩 러브 스토리입니다!
오늘 아침에 도플이 좀 아팠거든요. 아주 그냥 부치라고 해놓고는 알고 보면 공주님이에요. [웃음] 손이 많이 가요. 아프면 맨날 드러눕고. | 갱어
사실 이번 인터뷰 응할 때 좀 고민했어요. 커플?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데? [웃음] | 도플
바쁘디 바쁜 일상의 틈새를 노려 어렵게 섭외한 이 커플, 시작부터 남다르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툭 내뱉는 말 뒤에 숨은 진심이 빤히 보이는 두 사람. 떼어놓고는 상상하기 힘든 찰떡같은 닉네임 탄생 비화부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퀴어로서의 진솔한 얘기까지, 매력 넘치는 ‘도플’과 ‘갱어’ 커플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필자가 두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약 2년 전, 당시 커플이 활동하던 단체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그 때도 각자 닉네임을 얘기하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한 이들을 보면서 솔직히 처음 든 생각은 ‘이러다 헤어지면 어쩌려고…’였다. 결국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확인하며 먼저 두 사람 각자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실제로는 여자만 만나고 있지만,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젠더퀴어에 가까워요. 어릴 때부터 제 정체성이나 성향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냥 이런 게 레즈비언인 줄 알았는데 레즈비언이면 누구나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던 거죠. 그게 아닌 걸 스무 살 넘어서 알았는데,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직 좀 혼란스러워요. | 도플
22살 때쯤 제가 레즈비언임을 알게 됐는데, 이런 저런 분들을 만나오면서 막상 같이 살 사람을 얻는 건 참 어렵더라구요. 따져야 하는 게 한 두 개가 아니니까요. | 갱어
이렇게 아직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과 확고함을 가진 사람의 만남에서 서로 간의 관계가 단단해지는 건, 비단 그것만이 관계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반증일 게다. 이미 상대방의 젠더/섹슈얼리티를 확인한 상태에서 서로의 인연을 가늠하는 잣대는 외모, 성격, 취미, 가치관 등 다른 것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과연, 두 사람의 닉네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전 여친과 헤어진 지 한 달 만에 지금은 문을 닫은 ‘미유넷’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하나 올렸었어요. 수험생이라 더 외로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냥 연락하고 지내는 또래 만나보자는 생각이었거든요. 오히려 그게 취향저격했는지 쪽지가 많이 왔었고, 도플은 느낌이 괜찮아 답변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는데 정말 독특하더라구요. [웃음] 마침 가톨릭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민이 깊었던 상황에서 상대방이 내가 생각했던 부분을 대신 말해주니까 뭔가 통했던 것 같아요. | 갱어
그렇게 혜화동 성당에서의 첫 만남은 외모지상주의자 갱어가 이쁜 도플에게,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성호를 긋고 돌아선 갱어에게 도플이 마음을 뺏기면서 아름답게 기억됐고, 관계도 급속도로 진전됐다. 알고 보니 도플 역시 한달 간의 솔로생활을 겨우겨우 보내고 바로 만났다고 하니, 그야말로 마성(?)의 퀴어들 간의 역사적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더 재밌는 건 두 사람이 서로를 알기 전 도플이 익명방에 쓴 글에 갱어가 단 댓글이 ‘도플갱어가 쓴 글 같네요.’라는 내용이었고, 이 때문에 두 사람의 닉네임도 자연스레 탄생했다고 하니 이 무슨 판타스틱한 운명의 장난인가 싶기도 하다.
아직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도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틈바구니에서, 커플임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이유 또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온 대답은 ‘관계에 대한 믿음’이 전제가 되고, 이 바닥에 공개 커플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알기 때문에 바로 오케이 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우문현답 아닐까.
소소하게 일상적으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 중에도 성소수자 가족을 구성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누군가는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어요. | 갱어
이상한 생각이긴 한데, 인권운동 판에서 사람이 없어 힘든 걸 직접적으로 느끼다보니 저희라도 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그래도 4년 넘게 함께한 커플로서 나름 할 얘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구요. | 도플
이렇게 섭외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는데, 막상 만날 약속 잡기가 무척 힘들었던 것 또 아이러니였다. 같이 안 살아서 그런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다만 서른 살 문턱에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다 보니 하는 일도 여러 가지고 쉬는 날도 서로 달라서 둘 다 시간 되는 날 맞추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무릇 이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 비춰지는 건 왜일까.
제가 아무래도 고정수입 없는 프리랜서로 살다보니 한 사람이 좀 부담이 커서 작년 말부터 새로운 시도로 제과 쪽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갱어랑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그랬던 건데 지금은 일을 해보니까 안 맞아서 그런지 ‘아 나는 어쩔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 중이에요. [웃음] | 도플
일 나갔다 들어오는 시간 자체가 서로 다르다 보니 우리끼리도 만나는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제가 요즘 여기저기 일을 벌이고 있어서 거의 밤 10시 넘어서 들어오는 상태라 저희끼리도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 갱어
사랑만으로도 충분했던 두 청년의 삶에 변화가 생긴 건 함께 생활한 지 약 2년 후. 처음 사귄 1년 동안은 으레 그렇듯이 서로 얼굴만 봐도 배부른 시절이었지만, 현실과 마주하게 된 후에는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독립된 생활을 유지해야 했기에 1년 정도의 방황을 거쳐 스스로 나서서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그래도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라는 마음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두 사람. 이 또한 아직 기존의 결혼-가족제도 등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성소수자 커플이 짊어진 짐이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가족의 지지와 사회적 인정이 곧 안정적인 삶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용돈 받고는 연애에 매진했었는데, 어느 정도 관계 안정이 되니 진짜 자기가 원하는 일들을 찾게 된 것 같아요. 막상 사회 나와서는 정규직에 그렇게 목맸던 것도 예를 들어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그런 타이틀이 있어야 되더라구요. 사실 우리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기 때문에 괴로운 것도 있죠. 그래서 ‘무지개요양원’ 같은 실버산업에도 관심 있구요. | 갱어
▲두 사람이 각자 일하는 모습 (각각 도플/갱어)
‘사귀는 여자 집에 가서 사는’ 특기(?)를 발휘한 도플 덕분에 자연스레 갱어 집에서 같이 살게 된 두 사람. 누군가가 자신의 삶의 영역에 들어온다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의식주를 함께 나누며,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는 것. 일상의 공유가 가져다주는 그런 안정감과 만족감은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게 할 생각이 딱히 있었던 건 아니어서 어쩌다가 재웠는데, 다음날 너무 당당하게 제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웃음] 아무튼 그렇게 하다 보니 저희 집에서 같이 살게 됐어요. 쭉 이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애착이 생겨서 좀 좁아도 쉽게 옮기지는 못하겠더라구요. | 갱어
이상하게 그냥 같이 얘기하고 하루 이틀 지내다 보면 어느샌가 내 옷이 늘어나고 내 책이 쌓여가는 데 그렇게 머물러도 나가라는 얘기는 없더라구요. 그때 언니 집에 언니 5촌 조카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는데 언니 옷을 입고 있길래 저도 모르게… [웃음] 어쨌든 지금은 같이 살고 있는데 월세는 못 내는 대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죠. | 도플
같이 살면 그 동안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못 보던 것도 보게 되는지라 많이 다투고 실망한다던데, 두 사람은 어떨까. 도플+갱어라는 이름처럼 죽이 착착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막상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놀랐을 것도 같은데.
처음에는 둘 다 성격도 수더분하고, 가치관도 엄청 잘 맞아서 좋았어요. 저는 소위 운동권 사람들과도 많이 접촉한지라 과격함에 가까운 진보라 생각했었는데, 이 사람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니어서 놀라지 않을까 했지만 다행히 잘 스며들었죠. 재밌는 건 얘기하면 할수록 우린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살면 살수록 다른 걸 서로 보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웃음] | 도플
정작 함께 거주하면서 맞닥뜨리게 된 불편함은 따로 있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웃의 눈빛이 ‘여자 둘이 함께 산다’는 시선으로 덧씌워져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입방아에 오르게 되는 건 예사다. 문제는 범죄 노출의 위험까지 떠안게 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도플은 스토킹을 당한 경험까지 있어 보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보니 주거비마저 올라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동거’라는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삶을 꾸려나가는 건, 함께 있음에 마음을 나누고 존재를 의지한다는 목적이 분명 절실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성적 긴장감이나 애틋함의 느낌을 계속 가져가고 싶은 커플은 자연스럽게 다른 형태로 관계를 구축하겠지만, 사는 동안 함께 살면서 누군가에게 나만의 세계를 오롯이 보여주고 미래를 같이 그리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 또한 가족/공동체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그래서 동거는 가족구성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어쩌면 가장 기본이 되는 실천 형태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서 설문에 응한 레즈비언들의 ‘오래 함께 사는 관계’에 대한 열망은 90.9%가 연인과의 관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며(게이 82.3%), 98.1%가 파트너십의 제도화를 원한다는 부분에서도 볼 수 있다.
도플이 퀴어연극단에서 배우로 활동 중인데, 그래서 좋은 건 시시때때로 집에서도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거든요. 집에 한 사람이 들어와 있는 건 맞는데, 오늘은 어떤 언니가 와 있다가 또 내일은 어떤 아이가 와 있는 느낌이에요. 다중인격체와 산다고나 할까요? [웃음] | 갱어
어떤 사람이 됐든 처음부터 제 관심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에요.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같이 살 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적 긴장감은 다분히 개인적인 거라 복잡한 부분이 있죠. 때론 폭발적으로 있다가도 때론 거의 없기도 하고. 저에게는 그렇게 많이 중요한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제 원래 모습은 남성에 가까운 면이 많다고 여기긴 했는데 레즈비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또 성전환수술에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다 보니 그냥 이렇게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이 사람은 나의 이런 모습을 온전히 받아줘서 그런지, 이제는 영혼까지 깊숙이 좋아하는 사람이 된 거죠. | 도플
결국에는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 나와 가장 잘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서로 들어야 특정 범주를 떠나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녹아나게 된다. 두 사람 또한 그 전과는 다르게, 특별했던 상대방의 존재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진심을 드러냈다. 혜화동 성당에서의 첫 만남을 생전 처음 격식 있게 차려입고 나온 경험으로 기억하는 도플과, 도플이 ‘여성으로서의 연기는 성녀 아니면 창녀가 대부분’이라는 연극판을 벗어나 집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 ― 심지어는 어차피 사고를 많이 치는 종자여서 이해할 수 있는 한계는 넘지 않는 비글 한 마리를 데리고 산다는 느낌으로의 삶 ― 이 마냥 사랑스럽다는 갱어에게는 ‘양날의 검’ 같은 동거가 최선의 선택이었고, 부부로서의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실천방식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정말 같이 사는 기간이 오래 되고 부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수록 저도 가끔 그런 얘기하거든요. 연애하고 싶다고. [웃음] 근데 그거는 그냥 1차적인 욕망에 가깝고, 내가 근본적으로 뭘 원하는지 따져봤을 때는 사람들마다 다 다를 것 같아요. 성적 긴장감을 더 원하는 사람은 이제 그쪽으로 가면 되는 거고, 저 같은 경우는 결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나 관계의 신뢰감을 바탕으로 좀 더 관계가 깊어질수록 무르익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끌렸어요. | 도플
너무 가족화가 됐다 싶으면 가끔 한 번씩은 연애하는 느낌을 주는 걸 좋아해요. 아침 출근 전에 쪽지를 써놓고 나간다거나, 한창 불타올랐던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린다던가 하는 거죠. 데이트는 그냥 동네 돌아다니면서 같이 저녁 먹거나, 도플이 공부하려고 점찍은 공연 보는 것 정도로 해도 좋아요. 어찌 보면 동네의 이점을 누리고 있어요. | 갱어
▲두 사람의 데이트하는 모습
‘가장 이상적인 관계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이다’라는 말처럼, 서로 마음을 보듬어주고 아껴줌으로써 각자에게 일어난 변화는 참으로 소중했다. 내재된 불안에 힘겨워했던 도플은 갱어 덕분에 차분하고 진실된 감정을 습득할 수 있었고, 누구랑 같이 사는 걸 꺼려하던 갱어는 도플의 매력에 푹 빠져 생애 처음 청혼까지 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테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느낌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때문인지, 가족과의 부침 때문인지, 아니면 혼자 외롭다는 경험을 많이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전에는 불안감이 많은 편이었어요. ‘나를 진짜 사랑할 거 아니면 다 가 버려!’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으니 오죽했겠어요. 이 사람과도 초반에 제가 ‘너무 좋으면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돼서 분명 실망할 거야’라는 파국적인 면에 사로잡혀서 사귄지 6개월쯤 됐을 때 헤어지자고 했는데, 가슴을 부여잡고 너무 우는 거예요. 살면서 나랑 헤어지는 게 이렇게 슬픈 사람은 처음 봤는데, 그 슬픔이 나를 원망하는 것으로 느껴진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어서 그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이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다, 마음이 진국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도 있어요. | 도플
청혼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었는데 다 거절했어요. 결혼이란 게 같이 삶을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랑 하는 거지, 가족 간의 관계가 중요해서 한다거나 결혼적령기니까 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 같은 게 너무 싫었거든요. 이 사람은 성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 관계에 능수능란하고 사람 잘 부리는 운동권 이미지였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 같은 면에다가 저만의 얘기를 공감해주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결국 같이 지낸지 한 달 만에 ‘아, 이 사람이랑은 그냥 같이 살아가볼만 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나랑 같이 살자. 나랑 결혼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얘기했죠. | 갱어
난 그 동안 어떤 관계에서건 내가 더 적극적이었고, 또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먼저 청혼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당혹스러운 나머지 언니한테 ‘지금 이게 결혼하자는 얘기냐’라고 물어보지 않았어? | 도플
물어봤지. 그래서 결혼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성별이나 포지션 같은 규범에 사로잡히면 안 돼. | 갱어
두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준 또 하나의 영역은 바로 ‘신앙’이었다. 3대째 이어져 온 가톨릭 집안에서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도플은 수도공동체에도 있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성소수자로서 어렸을 적 괴로웠던 마음도 나름대로의 신앙에 대한 고민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찾은 뒤에는 자유롭게 된 상황이었지만, 관계 중독적인 생활에 지친 나머지 기도로 갈구하게 된 순간 마주한 게 갱어와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나랑 오래 만나서 같이 살 사람 아니면 알아서 거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 이 사람과 얼굴도 모른 채 온라인에서 연락하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를 막 억지로 끌고 다니는 꿈을 꿨는데 그게 너무 생생했던 거죠. 그래서 일부러 첫 만남을 혜화동 성당으로 잡아 확답을 듣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 도플
갱어 또한 도플과 함께 들어간 단체에서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활동한 경험을 소중히 생각한다. 인권운동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막 열정적으로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찾아내려 한 것만 해도 신앙을 실천하려는 삶이었을 것이다.
▲활동했던 단체 사람들과 함께한 퀴어퍼레이드에서의 두 사람
그러한 신앙에 대한 고민이 지금은 ‘탈종교’의 형태로 구현되고 있지만, 두 사람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반드시 어딘가에 소속돼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아도, 꼭 무언가를 맡아 몸소 활동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 해답을 찾고 있는 신앙의 자리가 남아있음을 그들은 고백한다.
이전 용산 참사 때 가톨릭 단체에서 미사랑 노래 부르는 운동을 했었는데, 사람이 없어 엄청 힘들었던 경험이 뼈저리게 남아있어요. 그래서 갱어와 활동했던 단체에서도 가능한 한 돕는다는 마음으로 신앙 붙잡고 열심히 임했죠. 주변 사람들도 거의 다 가톨릭 신자인 데다, 저는 가톨릭을 저의 부모라고 생각하거든요. 덕분에 물심양면으로 혜택도 누리고 사랑도 많이 받은 한편, 청소년기 성 정체성으로 괴로울 때 결국 신과의 대화를 통해 헤쳐 나온 것도 신앙 안에서였죠. 지금도 사실은 제 삶의 포인트이고 거부할 수 없는 뿌리 같은 존재예요. 다만 유신론자임에도 종교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돼 지금은 절연한 상태이긴 해요. | 도플
저는 개인적으로 단체 활동하면서 느꼈던 회의감 같은 게 좀 더 있구요. 종교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신앙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종교와 교리에 얽매이는 건 좀 경계하는 편이거든요. 사실 텍스트로 쓰인 말이라는 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는 해도 그 쓰는 사람의 입장이 녹아들어가게 돼 있고, 종교라는 건 사회의 지배자들이 하류 계층들을 지배할 때 이용한 부분이 있었잖아요. 그럴 때 들어가는 교묘한 해석이나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 위험한 거죠. 세상을 바라보는 올곧은 관점은 좋지만, 신의 말씀이라는 명명 하에 자기 프레임에 맞춰 말씀 전하는 목사들을 보면 덜컥 거부감이 들어요. 그래서 동반자와 신앙생활에 대해 얘기한다는 게 저희한테는 매우 중요해요. | 갱어
신의 이름을 가장하여 벌어지는 혐오스러운 광경들, 반인권적인 모습들이 모두 종교의 탈을 쓴 것임을 발견한 순간, 참된 신앙인이라면 종국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의 휘장을 건 채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종교라는 틀을 해체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진리를 추구할 것인가에 과연 해답이 있겠냐만, 끊임없는 성찰과 물음을 통해 스스로의 믿음을 개척해가는 삶은 일견 가족/공동체의 의미를 되묻는 작업과 닮아 있다.
‘가족’하면 저도 사실은 되게 따뜻하게 느끼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여러 부침을 통해서 지금은 가족 해체주의까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원가족에게 일찍이 커밍아웃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아 부침이 많았던 터라 지금은 애증만 남은 채로 절연했거든요. 어렸을 때는 부족함 없이 자랐고 부모님 기대대로 많은 걸 충족시켜드리면서 하고 싶은 일도 다 지지받았지만, 딱 하나 ‘딸이 퀴어’이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걸린다는 부모님의 고백이 얼마나 슬픈지 몰라요. | 도플
아직 집에 커밍아웃은 안 했는데, 언젠가 부모님이 “너는 왜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않냐. 너는 진짜 누구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느냐. 너는 왜 그런 얘기를 우리한테 안 하니” 같은 얘기를 꺼내면서 서러워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정말 한 번도 누구를 만나보지 않았고 데려온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느냐”고 답변드렸어요. 집에 데려간 적도 있고, 전에 만난 사람도 부모님이 봤는데 그거에 대해서 여자이기 때문에 인식 자체를 못하시는 것뿐이거든요. 결혼에 대해서도 저는 생각이 없다는 얘기까지 했는데, 그 다음날 어머니가 “그래. 차가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남자건 여자건.”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말씀하셔서 당황했죠. [웃음] 지금 부모님에게 도플은 성당에서 알게 된 자매님으로 되어 있고 신앙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 관계로 포장을 좀 했어요. | 갱어
부모도 부모 나름대로 다르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설명드리고 마음을 풀어나가야 할지는 두 사람의 숙제일 수밖에 없다. 계속 부딪히게 될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부디 큰 탈 없이 지나가기를,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언젠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를 바랄 뿐이다.
한 번은 언니네 조카들이랑 논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조카들이랑 같이 노는 것도 너무 재밌었거든요. 그 중 큰 조카가 10살인데, 고모랑 고모 친구가 같이 있는 걸 보고 일기장에다 ‘고모랑 고모 친구랑 놀았는데 너무 좋았고, 왜 같이 사는지 궁금하다’고 썼다는 얘길 들으니 참 좋더라구요. | 도플
그 조카에게는 나중에 커밍아웃해도 되지 않을까? [웃음] | 갱어
▲두 사람이 함께 그리는 내일의 이미지
이제는 ‘애착 관계와는 무조건 붙어있고 싶다’는 소망(도플)과, ’하루의 시작이랑 끝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갱어)이 이루어진 지금, 두 사람이 그리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워낙 아이를 좋아해서 입양은 했으면 좋겠고, 잘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 굳이 우리에게 금기시할 필요가 없는 걸 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사회적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는 편견도 좀 깨고 싶은 생각이 있죠. 결혼제도가 있으면 결혼도 하고 싶구요. | 갱어
저에게 제일 필요한 건 보호자로서의 제도적 보장이에요. 예전에 이 사람이 쓰러져 응급실에 갔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불안함이 있죠. 처음엔 제가 건강을 챙겨주는 게 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챙긴다고 금방 없어질 병도 아니고 개인적인 한계도 있어서 우선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자는 마음이긴 해요. 아무튼 이전 경험들로 인해 불안감이 좀 있었고, 상대방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후속조치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좀 그렇죠. 내가 제일 슬픈 사람일 텐데 그걸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좀 기분이 안 좋고요. | 도플
주민세를 따로 내거나 집을 구할 때 가산점 제도에서 밀리는 것도 서글픈데, 전입신고 후 ‘동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 년에 한 번씩 무상거주 사유를 적어야 하는 건 누구를 탓해야 할까. 이성애/혈연중심주의 가족제도가 너무나도 견고한 한국 사회에서는 조그마한 변화도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재혼가정의 배우자 자녀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민등록 등・초본에 ‘동거인’으로 표기됐다고 하니, 그 동안 받았을 상처는 무슨 수로 아물 수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누군가는 동성혼을 꿈꾸거나 새로운 가족을 그리며 기존의 관념을 깨뜨려야 하는 것이다.
결혼도 원래는 별 생각 없었는데, 언니를 만나면서, 또 비혼주의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결혼에 대한 틀을 깨고 동성결혼을 원하게 된 것 같아요. 입양이나 출산에 대한 얘기는 제가 더 많이 했는데,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옛날에는 제가 아빠로 불리는 상상을 했어요. 아빠가 가슴이 클 수도 있고 끼도 떨 수 있잖아요. [웃음] 언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저라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언니가 사람답게 만든 부분이 있거든요. | 도플
물론 입양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두 사람의 생각이 부디 언젠가는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밖에. 비록 지금은 2016년 한국을 살아가는 커플일지라도. 절박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그래도 마지막은 훈훈하게 ‘서로에게 한 마디’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훈훈하게요? 사실 사랑한다는 얘기도 제가 훨씬 많이 하고 애정 표현도 저는 많이 해요. 얘가 안 해서 그렇지. [웃음] 그냥 저는 이 사람에게 애정적인 관계를 기본으로 한 가족이 항상 돼주고 싶어요. | 갱어
저는 이미 25살 때 사람들로부터 치여서 지쳐 기도할 때 깨달았듯이, 연애만으로 살 수 없는 사람임도 알았고 가정을 이뤄서 살고 싶은 마음이 그때부터 싹텄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참고 사는 언니가 참 신기하죠. 잘 표현 못해서 미안하고, 저에게 많은 걸 준 것 같아 엄청 고마워요. 나를 지켜보고 지지해주는 안정적인 빽이 있다는 느낌, 그런 힘이야말로 사랑 아닐까요. | 도플
<新 가족의 탄생> 연재 순서
#01 사랑에 차별이 있나요 – 레즈비언 부부 ‘낮잠과 유다’ 이야기
#02 무지갯빛 마음이 모여 사는 곳 – ‘무지개집’ 사람들 이야기
#03 별처럼 반짝이는 인연을 맺다 – 게이 부부 ‘플플달 제이&크리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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