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결혼식 청첩장 표지

저희는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는 7년차 동성커플 오소리와 소주입니다. 지난 5월, 하객으로 참여한 300여명의 축하를 받으며 공개결혼식을 올린, 7개월 차 신혼부부랍니다.

결혼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결혼해서 달라진 부분이 있는가’ 이지만 사실 달라진 건 없어요.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함께 살았고, 사랑했고,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결혼을 했다고 해서 이게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딱 하나 바뀐 것이 있는데 그건 호칭이에요. 저희가 서로를 부를 때는 결혼 전과 똑같이 ‘여보’, ‘자기’ 로 동일하지만, 주변 분들이 부를 때는 다르더라고요. ‘남자친구’, ‘애인’ 대신 ‘남편’ 으로 바꿔 불러주고 계세요. 결혼을 해서 달라지는 부분을 저희 스스로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데, 다른 사람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에게 결혼’식’은 하나의 ‘세레머니’ 정도의 의미였어요. 생일 때 친구들을 불러모아 생일파티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을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알리고 축하 받기 위한, 그냥 특별한 날 중 하루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저희의 결혼식이었지만, 주인공들이 동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특별하게 다뤄졌어요. 저희는 평범하다고 생각한 청첩장이었지만, 청첩장을 받고 초대 문구를 읽는 것만으로 눈물을 훔치던 지인들도 많았죠. 저희의 결혼은 정말 평범했지만, 너무나도 평범해서,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의미있는 결혼식이 되었답니다. 저희의 결혼은 저희의 의도가 어찌되었건 하나의 운동이자 사회적 메시지로서 의미를 가졌어요.

소소한 결혼식 초대 문구

사실 저희 말고도 결혼식을 올리는 동성커플들은 알게 모르게 많이 존재해왔어요. 다만, 일반 웨딩홀에서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동성커플들이 별로 없었을 뿐이지요. 스몰웨딩이 아닌 일반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건 단순히 우리의 지인들을 더 많이 초대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결정은 쉬웠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는 초기 단계부터 걱정이 앞서긴 했어요.

결혼반지, 예복, 식장 대관 등 이성애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웨딩 산업 속에서 “불이익을 당하면 어떡하지,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아예 거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성소수자 배제적인 사회인지 뻔히 알고 있기에 ‘거부’의 경험을 할 까봐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런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했어요. 반지를 맞추러 갔을 때는, 반지의 굵기, 디자인, 재질, 마감처리 등 까다로운 우리의 요구에도 직원이 친절하게 우리가 원하는 반지를 찾아내주었고, 예복을 맞추러 갔을 때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획일화된 예복이 싫었던 우리에게 직원이 수 십장이 넘는 원단을 보여주어 결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색깔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으며, ‘두 분이 같이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멘트까지 해주셨어요. 대망의 식장을 대관할 때는, 대관 계약서에 신부와 신랑으로 구분되어 있는 글씨를 우리가 보는 앞에서 펜으로 쫙쫙 그으며 오롯이 우리의 이름만 적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답니다. ‘(신랑신부) 이런 구분은 필요 없죠.’ 라고 말씀하시면서요. 동성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문이 나서 되려 웨딩홀이 손해를 보면 어쩌나 걱정하는 우리의 오지랖에 대해서는, “사회가 많이 바뀌어서 괜찮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멀다고 생각한 아름다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직원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죠. 저희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 상업적인 목적의 환대였을 수도 있지만, 거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사회에 대한 불신과 막연한 두려움만 너무 깊게 걱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신랑들” 소성욱 & 김용민

“신랑들” 소성욱 & 김용민

결혼식은 정말 평범하게 진행됐어요. 주례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 조금 특별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많이들 주례 없이 진행하기도 하니까요. 입장과 퇴장 때 신랑들이 춤을 추며 행진한 게 조금은 특별했달까요? 사전 영상, 입장, 다짐문 낭독 (우리는 혼인서약서라는 말 대신 ‘다짐문’이라는 말을 사용했어요), 축사, 축가, 퇴장, 단체사진, 부케던지기. 그 어느 하나 크게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던 결혼식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는 하객들의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어요. 결혼식장 한편에서 들리던 아기 울음소리, 사실은 조금 지루했던 곱단이 은사님의 축사, 평소와는 다르게 한껏 차려입고 온 지인들 등 모든 요소들 하나하나가 그냥 정말 평범한 결혼식 같아서 좋았다고들 해요. 사실 우리는 더 특별한 요소들을 넣어서 재밌는 결혼식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1시간이라는 식 진행 시간은 너무나 짧았답니다. 일반 식장을 대관했으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만요.

소소한 결혼식의 순간들

소소한 결혼식의 순간들

 

성소수자 만세!

성소수자 만세!

그렇게 결혼식을 올린 후 저희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도시로 소문난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어요. 그곳에서는 길거리에서 손을 잡아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저희 말고 다른 성소수자 커플들의 자연스러운 사랑표현도 볼 수 있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동성부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벽들이 존재한답니다. 저희가 신혼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한 배경에도,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을 잊고자 함이 있지 않았을까 하네요.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서 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 찾기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함께 살고 있었지만, 결혼도 한 마당에, 신혼집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두 명 모두 변변치 않은 벌이에, 서울에서 전세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어요. 한국에는 청년과 신혼부부들을 위한 여러가지 대출이나 주택 제도가 존재하지만 거기에서 저희를 비롯한 동성부부들은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는데요. 둘이 함께 살기에는 턱없이 좁은 집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일찍 결혼한 제 이성부부 친구들이 신혼부부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신혼집을 마련하여 살고 있는 걸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기도 했어요.

오소리와 소주의 보금자리. 집은 좋다. 단지 둘이 살기에 좁을 뿐…

저희는 여전히 등본을 떼면 단순히 ‘동거인’ 관계일뿐이고 가족관계증명서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희는 서로의 의료기록을 열람할 수 없으며 수술이 필요한 긴급한 순간에도 보호자로서 의료결정위임권을 행사할 수 없기도 하죠. 저희 두 명 중 한 명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지만, 다른 한 명은 지역가입자로 분류되어 보험료 상 불이익을 받기도 해요. 원래는 부부 중 한 명만 직장가입자여도 다른 한 명도 직장가입으로 분류되는데 말이죠.

어느 날 우리 두 명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를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정말 특이한 한국의 장례법상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나 결혼법상 배우자가 아니라면, 장례절차에 관여할 수가 없는데요. 심지어 혈연 가족이 없을 경우, 무연고자 처리가 되어 버립니다. 지난 한 평생을 함께 한 동반자가 있음에도요. 생애 마지막 순간 조차에도, 저희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더 큰 슬픔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도 언젠간 늙을텐데…

하다못해 통신사 가족결합요금할인이나 항공사 가족 마일리지 제도 등 평소 생활에서 가족, 부부를 대상으로 한 각종 제도들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항공사 가족 마일리지 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저희가 신혼여행을 떠날 때 한 명 정도는 마일리지로 다녀올 수 있을 정도가 되는데 말이죠! 얼마 전 대한항공에서 캐나다에서 혼인신고를 한 동성커플을 가족으로 등록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세계인권선언일에 알려진 좋은 소식이지요. 하지만 외국에서의 혼인신고라는 제한적인 조건이 필요해서 한국에 있는 모든 동성부부들이 가족으로 등록할 수 없는, 여전히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동성혼/파트너십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미 많은 동성커플들이 가족으로, 부부로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법제도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불평등한 일이고 이게 곧 차별인 것이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고, 이 국가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성가족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동성혼/파트너십 권리, 보장하라!

국가가 계속해서 뒷짐지고 기다릴 뿐이라면, 우리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겠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의 필요라고 생각해요. 대중의 필요가 보이지 않는다면 법과 제도 또한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고, 사회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어.”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우리가 잃어버린 권리에 대해 인지해나갔던 시기라면, 이제는 그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족으로서 누릴 수 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것들을 이제는 보장하라고 사회에 요구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성소수자 가족’이 더 가시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요. 그런 차원에서, 당신의 ‘퀴어가족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동성결혼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