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명의 성소수자가 동성커플의 권리를 인정하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는 13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동성혼· 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 집단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동성부부와 커플은 헌법 상 보장된 기본권인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여 차별 없이 주거권, 노동권, 사회보장권, 건강권을 누리지 못하는 등 전반적인 경제적·사회적 권리의 침해를 겪고 있다”면서 진정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또한 중앙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 어디에서도 동성부부와 커플에게 어떠한 공적 인정도 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은 국제인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진정인은 대한민국 정부 및 각 부처의 장, 국회의장, 각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며, 진정취지는 정부와 국회의장에게는 성별과 관계없이 혼인이 가능하도록 민법 개정 등 입법적 조치를 취할 것, 각 부처에서 동성 부부 및 커플에게 의료, 건강보험, 주거 공급, 직장 복지 등에 관한 제도를 개선할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진정서에는 한국의 동성 커플이 주거, 연금 등 사회보장의 측면이나 배우자나 파트너가 아프거나 사망했을 때의 법률관계 등 생활의 많은 면에서 겪는 어려움이 드러나 있다. 진정인들은 진정에 참여하며 아래의 내용을 남겼다. 

“만난 지 3년이 다 되어가고 미래를 생각하며 결혼을 점점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 매번 좌절감을 느낍니다. 무연고 장례식을 치른 어떤 노부부의 사연을 보고는 서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결국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고요. 서로가 사실상 파트너이자 동반자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아무런 연이 없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죽음에도 장례조차 치러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응급실에서 원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파트너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어요.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족도 뭣도 아니잖아요’ 라는 말을 들어야했고, 의식이 없는 파트너에게 적절한 조치는 원가족이 오기 전까지 보호자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미뤄야했습니다. 원가족이 도착한 후에는 보호자 1인에 속할 수 없었고, 응급실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지역가입자면서 무주택자여서 애인의 집에 얹혀사는 이유와 가난을 건강보험공단에 설명해서 제출해야했습니다. 동거사유를 쓰는 부분에서 참…”

 “저희는 7년째 만나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입니다. 저희는 둘 다 공무원이지만. 다른 부부 및 가족은 다 받는 가족수당도 못 받고, 파트너 가족의 경조사에도 경조사 휴가가 아닌 개인 연가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또한 연금 상속도 어려운 이야기죠.” <진정서 중 발췌>

이들은 앞서 올해 6월에 진행한 실태조사 (한국에서 동성 파트너와 동거 중인 380명 참여)를 통하여 “한국에서 동거 동성커플은 입원과 수술 등 의료이용 과정에서 서로의 보호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주거정책 등 부부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서 배제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진정인 발언 중인 김용민 씨(우)와 소성욱 씨(좌) 부부

진정인 김용민 씨·소성욱 씨 부부는 “제가 한 때 매우 아파 2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지금 남편이 없었더라면 저는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략) 물을 사러 밖을 나가지도 못할 때 남편이 물을 사다주고, 밥을 먹지도 못할때 식사를 준비해주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줄도 모르고 집안에서만 아파하던 저의 곁에서 날씨를 알려주던 것도 남편이었습니다. 저의 남편은 곁을 지켜주고 아플때 보살펴주는 소중한 존재로서 오랫동안 저의 옆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하고 보살펴주는 관계가 가족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관계가 가족이라는 걸까요? 이성커플들은 정말 간단한 서류 한 장만으로 결혼이 가능한데, 저희는 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저희의 관계를 증명해야만 하는 걸까요?” 라며 동성혼 권리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신속한 권고를 촉구했다. 

진정인 발언 중인 윤화영 씨(우)와 장서연 씨(좌) 커플

진정인 윤화영, 장서연은 발언을 통해 “만약에, 나에게 갑작스런 사고가 생긴다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 혈연가족보다 지금 내 파트너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가 아픈지, 내가 아플 때도 누구보다 걱정하고 잘 돌봐준 사람인데. 제 파트너는 법적으로 배우자로서의 권리가 없습니다. 가족의 선의에 기대지 않은 채, 저와 관련된 사항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저를 참을 수 없게 합니다. 이성커플은 아주 간단히 혼인신고만 하면 가능한 일을, 우리는 왜 할 수가 없습니까.“라며 동성커플에게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진정인 가족 발언 중인 비비안 씨(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부모모임의 비비안 씨는 진정인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동성혼 불인정과 같은) 사회적 차별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혐오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촉구했다. 

1,056명의 진정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3월 영국인-한국인 동성 부부 진정 사건을 각하한 것에 큰 실망을 느꼈다고 전하며 현재의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의 엄중함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진지하고 철저한 조사와 응당한 구제를 촉구했다.

1,056명의 진정인이 참여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는 모습

현재 세계에서는 27개국에서 동성 간 혼인이 가능하며 아시아에서도 대만은 2019년 5월부터 동성 간 혼인이 가능하고 일본의 2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간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있다.

끝.

진정취지 발표문 (백소윤, 가구넷 / 변호사) 

1. 

1056명. 국내는 물론 해외에 흩어져있다가 모아진 이 적지 않은 숫자는 366명의 설문 참가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성소수자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올해 6월 한 달 동안 국내의 동성 파트너와 동거 중인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차별경험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가족’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 갈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10년, 17년 함께한 아주 오래된 커플부터 1년차 기념일을 챙기는 풋풋한 신혼, 성별정정 전의 트랜스젠더와 그의 파트너도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따뜻함과 끈끈함도 담겨있지만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불편함과 서러움도 가득합니다. 

우리는 국가가, 제도가 동성 동거 커플의 배제를 전제로 계획되고 움직이는 걸 확인하며, 막연한 감정들이 짐작이 아니라, “동성혼 배제”라는 실체가 분명한 “차별”에서 비롯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2.

설문조사로 만난 동성 커플들의 차별경험은 각자 속한 시공간에 따라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삶의 안전망이 되는 주된 영역에서 동성혼 관계 불인정에 따른 근본적인 불안입니다.   

-주거정책에서의 배제로 주거비용을 1인 명의로부담, 1인가구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의료영역에서의 배제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선 파트너를 위해 보호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회 안전망인 보험제도에서의 배제는 직장가입자의 동거 중인 파트너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아 지역가입자로서 별도의 부담을 지도록 합니다.   

-직장 내 ‘가족’ 위주의 복지제도 하에서 차별은 더 두드러집니다. 경조사/ 휴가 비용이나 가족수당은 남의 일이며,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 불이익도 감수해야해야 합니다. 

-파트너와 사별한 경우, 남겨진 파트너의 지위는 십수년 떨어져 지낸 혈연가족보다 후순위로 밀려나 장례를 치르거나 상속권을 주장하기 어려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거나 기르고자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임신 출산 입양 등의 가족구성권, 재생산권 행사에는 제약이 따릅니다. 

1000명의 당사자들이 함께하는 이번 진정은 주요 영역에서의 동성혼 배제에 따른 차별에 문제제기 하고자 합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에는 반대하나 동성혼은 시기상조라는 말의 모순, 즉 동성혼 배제가 곧 차별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 입니다.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상 차별에 해당함은 또 말해 뭐하겠습니까, 다양성이 존중받고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로의 변화 시기를 앞당기는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3.

이미 21개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고 올해 5월 아시아 최초로 대만이 동성혼을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쿄시부야,세타카야 구를 포함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파트너십등록제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전세계 오이씨디 국가에서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 조차 동성커플을 승인하는 어떠한 제도도 두지 않는 몇개남지않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동성 커플의 혼인 신고 불수리에 대한 소송이 진행된바 있고, 외국에서 혼인 후 재입국하는 내국인 커플사례, 내국인과 외국인배우자의 관계나 주한외교관의 동성파트너의 인정 등 결단을 요구하는 다각적인 시도들이 있어왔습니다. 각 영역에서 삶의 불안으로 겪는 물리적 정서적 차별사례들은  “피해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말로 회피할 구실을 주지않습니다. 더 이상 판단을 유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번 진정사건으로 동성혼 및 파트너십 관계를 사회제도에서 포섭해야 할 필요성을 국가 인권위원회가 직접 살펴보고 차별 인정 및 제도 개선을 권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어서 국가와 사회가 성소수자를 위한 기본적인 안전망을 만들기 위한 중대한 결정을 서두를 것을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성 커플 당사자 분들의 참여에 감사드리며, 성소수자를 가족으로 둔, 그들의 가족이 되고자 하는 분들, 그들을 지지하고자 하는 많은 분들,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분들의 지지와 응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진정인 발언 1: 김용민•소성욱 부부

(성욱)

안녕하세요. 저희는 2013년에 만나, 지난 5월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는 신혼부부 소성욱, 김용민이라고 합니다. 

(용민)

결혼식을 올린 후 저희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도시로 소문난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는 동성커플끼리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녀도, 입을 맞추어도 어느 누구하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사랑을 속삭이더라도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동성부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벽들이 존재합니다. 저희가 신혼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한 배경에도,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을 잊고자 함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함께 살고 있었지만, 결혼도 한 마당에, 신혼집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두 명 모두 변변치 않은 벌이에, 서울에서 전세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죠. 한국에는 청년과 신혼부부들을 위한 여러가지 대출이나 주택 제도가 존재하지만 거기에서 동성부부들은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습니다. 둘이 함께 살기에는 턱없이 좁은 집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일찍 결혼한 제 이성부부 친구들이 신혼부부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신혼집을 마련하여 살고 있는 걸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이성부부들은 부부 중 한 명만 직장가입자여도 그 배우자 또한 직장가입으로 분류가 됩니다. 저는 4대보험이 가능한 직장에 다녀 건강보험 상 직장가입자지만, 제 남편은 지역가입자로 등록되어 있어 안내도 될 보험료를 더 내고 있는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어느 날 제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를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정말 특이한 한국의 장례법상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나 결혼법상 배우자가 아니라면, 장례절차에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혈연 가족이 없을 경우, 제 남편은 무연고자 처리가 됩니다. 지난 한 평생을 함께 했을 제가 있음에도요. 생애 마지막 순간 조차에도, 저희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더 큰 슬픔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가족 간의 불화, 직장에서의 불화로 매우 힘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울고 화를 내던 그런 때였습니다. 자존심이 강해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 응어리진 감정들을 제 남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제 남편은 제 곁에서 제 모든 짜증과 화를 오롯이 받아주며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제가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성욱)

제가 한 때 매우 아파 2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지금 남편이 없었더라면 저는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때는 같이 살고 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지하철로 2시간이 걸리는 거리의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제 남편은 항상 저를 보살피러 찾아와주었고 다음날에는 다시 2시간이 넘는 등굣길에 오르길 매일같이 반복했습니다. 물을 사러 밖을 나가지도 못할 때 남편이 물을 사다주고, 밥을 먹지도 못할때 식사를 준비해주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줄도 모르고 집안에서만 아파하던 저의 곁에서 날씨를 알려주던 것도 남편이었습니다. 저의 남편은 곁을 지켜주고 아플때 보살펴주는 소중한 존재로서 오랫동안 저의 옆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하고 보살펴주는 관계가 가족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관계가 가족이라는 걸까요? 이성커플들은 정말 간단한 서류 한 장만으로 결혼이 가능한데, 저희는 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저희의 관계를 증명해야만 하는 걸까요? 

얼마 전 리미티드 파트너십이라는 미국 다큐 영화를 보았습니다. 동성 간 혼인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국적이 다른 동성 파트너 한 명이 배우자로서 영주권을 얻지 못하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이지요. 미국에는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결혼보호법이 존재했기 때문인데요. 2013년 미국에서 결혼보호법이 폐지되기 불과 몇 달 전 파트너 한명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죽은 다음에서야 법의 보장을 받은 것이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사랑하는 부부로서 권리의 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지난 10월 21일 진행된 청와대 7대 종단 지도자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박해나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 함께 부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법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게 차별입니다.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은 동성 결혼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데 있어 누군가의 합의는 필요 없습니다. 만약 그럼에도 정부에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정부는 뒷짐 지고 합의가 되길 기다릴 게 아니라 앞장서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게 정부의 의무입니다. 정부는 더 이상 이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성커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고, 같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동등한 시민입니다.

오늘 우리는 1000명이 넘는 성소수자들의 염원을 담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섰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정부가 정부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동성혼/파트너십 권리에 대한 올바른 권고를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나중에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의 문제입니다.

진정인 발언 2: 윤화영•장서연 커플

(윤화영)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13년째 함께 살고 있는 동성커플 윤화영, 장서연입니다.

제가 저의 동반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3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리고 40대를 거쳐, 이제 50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일상은 여느 커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애틋한 연애초기 시기를 거쳐, 몇 번의 위기와 갈등을 겪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반려견 3마리와 함께 가족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서연)

저희는 둘 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한지 오래되었고, 함께 산지도 오래 되었기 때문에, 양쪽 가족들 모두 저희를 자연스럽게 서로의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족 경조사를 챙기고, 가족모임에도 자연스럽게 함께 갑니다. 저는 조카가 5명이 있는데, 저 뿐만 아니라 제 파트너도 ‘왕고모’, ‘왕이모’라고 부르면서 잘 따르고, 저희 어머니는 제가 요리를 잘 못하는 것을 알고, 제가 집에 가면 먹을 것을 싸주시면서 “화영이에게 갖다주라”고 챙겨주십니다. 서로의 가족에게도 저희는 가족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저희가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서글퍼질 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나에게 갑작스런 사고가 생긴다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 혈연가족보다 지금 내 파트너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가 아픈지, 내가 아플 때도 누구보다 걱정하고 잘 돌봐준 사람인데.’ 제 파트너는 법적으로 배우자로서의 권리가 없습니다. 가족의 선의에 기대지 않은 채, 저와 관련된 사항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저를 참을 수 없게 합니다. 이성커플은 아주 간단히 혼인신고만 하면 가능한 일을, 우리는 왜 할 수가 없습니까. 

(윤화영)

지난 13년간 저희 둘과 세 마리의 반려견, 그리고 양가 가족의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같이 하면서 더욱 동반자로서 신뢰감과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희는 평생을 같이 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건강하고 젊을 때는 그냥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으나 늙고 병들고 사망을 하게 되었을 때는 저희 둘의 관계는 법 밖의 존재가 되어 수년간 같이 이루어 온 재산이나 그 관계를 보호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제 동반자가,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길 희망합니다. 저희의 관계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싶습니다. 비단 이러한 상황은 저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성커플들도 겪고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혼인의 자유와 ‘법 앞에 평등’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지금은 2019년입니다. 이제 대한민국도 동성커플들에게 혼인할 권리와 파트너로서의 권리를 보장할 때가 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신속한 결정을 내리길 촉구하며, 이 진정에 함께 참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정인의 가족 발언: 비비안 (성소수자 부모모임)

저는 24살 게이아들을 둔 엄마 비비안입니다.

저희 아들은 7년간의 자기부정의 시간을 힘겹게 겪은후 21살때 부모에게 어렵게 커밍아웃 했습니다. 제가 아들의 커밍아웃을 받았을때 처음엔 충격이 컸지만, 바로 드는 생각은 ‘평생 결혼도 못하고 외롭게….불행하게….’였습니다. 실제로 그당시 위로랍시고, ‘불행한 인생을 살게 낳아준 엄마가 미안하다’라고 말하기도 했구요.

후에 성소수자 부모로서 인권활동을 하면서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절망했을까, 생각해보니

이 사회가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성소수자는 불행한 삶을 산다는 것이, 또는 내 아들이 이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충격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부모는 대부분 자식보다 먼저 이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동성애자인 제 아들이 아플때 옆에서 보살펴주고 병원에 데려가 줄 보호자 없이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면 눈물도 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기부정의 시간이 매우 길고 힘들다고 합니다.

안그래도 청소년시기에 나는 남과 다름을 인지하고 생활 하는게 힘든데, 결국엔 ‘결혼도 할 수 없는’ 이라는 사회적 차별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혐오하는데 ,큰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자들은 결혼이 이렇게 중요한 권리인줄 모릅니다.

그들은 심지어, 결혼은 해도 후회,안해도 후회라고 농담처럼 얘기합니다.

우리 성소수자도 이런 얘기 농담으로 하고 싶습니다.

안 그래도 소수라서 숫자도 적고 소외되어 힘든 성소수자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행복하게 살도록 사회가 인정하는게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해주면 사회적으로 어떠한 피해가 생기길래 자꾸 합의가 필요하다는건지요.

이 사회가 소수자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함께 공감하고자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50여년동안 반평생 일하며 월급받아서 꼬박꼬박 세금도 잘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 나라에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사회적으로 동성혼이 인정되고 파트너쉽이  만들어지면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있는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도 사회적으로 활발해질것 같습니다.

또한 연애 중인 저희 아들같은 동성커플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거리를 돌아다닐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결혼도 못하고 평생 혼자 쓸쓸히 불행하게 산다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없어지면 커밍아웃하는 당사자도 커밍아웃 받는 부모도 조금 덜 힘든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저의 게이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당당하게 행복하게 사는 꿈! 저도 매일매일 꾸고 싶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