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사회적 합의’ 운운하기 전에 할 일을 하라
동성혼 불인정이 바로 차별이다
어제 11월 19일 TV로 중계된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 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한번 ‘차별에는 반대하나 동성혼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하였다.
그러나 혼인제도에서의 배제는 헌법상 기본권의 문제이자, 차별의 문제다. 평등과 반차별 원칙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기본권 거부의 입장을 보며 성소수자와 평등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절망을 느꼈다. 기본권의 실현을 지연하는 정당한 이유가 ‘다수의 의견’일 수 있을까. 여성이 처음 선거권을 얻게 되었을 때 ‘사회적 합의’가 있었을까.
한편 과연 ‘사회적 합의’란 무엇이며 또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나? 관련 인식을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들은 다소 편차는 있지만 최근 2019년 한국 갤럽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7%가 동성혼에 찬성하였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시점에 동성혼 법제화가 되는 나라도 많다.
벨기에가 동성혼 법제화를 이룬 2003년에는 국민의 35% 정도가 이에 찬성했다. 동성혼 법제화 이후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성소수자에 대한 혼인권 차별이 해소되었다. 동성혼 찬성율은 더욱 올라가 현재는 78% 정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소년 성소수자 자살율이 감소하였다.
문 대통령은 동성혼 법제화까지의 미국과 뉴질랜드의 ‘오랜 세월’을 말했다. 이 기약 없는 평등의 ‘비전’은 많은 젊은 성소수자들과 이미 오랜 시간 기다린 중년 노년의 동성커플을 좌절시켰다. 더 이상 이들을 ‘과연 내 조국에서 내 생애 안에 가능할 것인가’의 절망으로 몰아넣지 마라.
대만에서는 2019년 5월부터 동성 간의 혼인신고가 가능하고, 현재 일본에서는 2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커플의 파트너십 등록이 가능하다. 이러한 법제화나 진전의 추세가 매년 더 가속화되는 이유는 이미 28개국에서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 덕분이다. 지금 우리는 1980년에 사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대화와 합의는 빠르게 진행된다. 정부가 할 일을 한다면 말이다.
한국 정부는 어떠한가. 한국 국민의 낮지 않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사법부에서의 거절, 입법부의 무응답, 행정부의 무대책 하에, 성소수자는 철저하게 법 바깥에 놓여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없는가? 대만 법무부는 2011년 각국의 동성혼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공개했다. 차별금지법을 포함하여 노동, 교육, 사회보장 등 삶의 여러 상황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막는 크고 작은 노력이 있다면 많은 성소수자가 조금이라도 덜 차별적으로 공적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차별과 인권 침해를 구제하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대화는 중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기본권 이슈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끌어 올리기 위한 대화를 촉진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어제 대통령의 발언은 이 대화를 닫게 만들었고 ‘사회적 합의’에서 조금 더 멀어지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성소수차 차별에 반대하는 정부라면 ‘시기상조’와 ‘사회적 합의’를 외치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제 저 말 말고 다른 방법을 찾기 바란다.
2019. 11. 20.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