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차근차근 흘러 8년이라는 시간이 켜켜이 쌓였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고, 처음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들보다 훨씬 견고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햇빛이 잔뜩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강아지와 함께 빈둥대기도 하고,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서 하루에 2만보 넘게 걸어다니며 히히호호거리기도 합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카페에 앉아 각자의 휴대폰을 보고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같은 집에서 매일 같이 잠을 자고, 같은 밥을 먹으며 보낸 8년의 시간은 우리를 정말 서로의 반쪽으로 만들어주었지요. 전쟁이나 재난같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붙잡은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미묘한 진동을 느낍니다. 그것은 일요일 오전 달콤한 늦잠을 자고 있을 때 난대없이 울리는 공사소리처럼 불쾌하게 찾아와, 진도3 정도의 지진처럼 우리의 발판을 조금 흔듭니다.
전입신고를 할 때, 주택관련으로 대출을 받을 때, 하다못해 휴대폰 할인에서도 우리는 ‘가족’으로 묶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고 있지만 사회는 우리를 서로의 보호자가 아니라 하며, 우리는 가족으로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4대 보험을 납부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견고한 미래는 건강이나 사고 등 피치못할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만 보장됩니다.
사고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아프지 않는 삶이란 있을까요? 우리 둘 중 하나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일상은 파도앞의 모래성처럼 금방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도권 밖에 있다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단정되고, 그마저도 때때로 혐오의 표적이 된다는 것에 피로함을 느낍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변수가 생긴 요즘입니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사회적으로 서로의 배우자도, 가족도 아니기에, 살얼음 판을 걷는 것처럼 감염예방 대책을 따를 뿐입니다.
그저 오늘도 대체로 우리는 안녕합니다. 맛있는 식사를 함께하고 살을 맞대고 사는 매일의 일상에 못내 행복합니다. 같은 성별의 사람 둘이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상가족의 범주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살가운 계절인 이 봄, 꽃을 보며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언제쯤 봄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