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주택총조사의 동성부부 응답 배제는 통계의 중대한 오류

“가구현황 파악할 수 없는 가족관계 문항 즉각 시정하라!”

10월 14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강신욱 통계청장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성부부의 경우 가구주와의 관계에서 ‘배우자’로 응답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하지만 통계청장의 입장과 달리 어제 10월 15일부터 시작된 인구주택총조사 인터넷조사에서 표본으로 선정된 동성부부들은 배우자로 응답을 할 수 없었다.

오늘 장혜영 의원실의 질의에 따르면 통계청은 이러한 시스템 상의 오류를 인정하였다. 하지만 즉각 시정은 어렵고 대면과 전화 조사에서도 현장 수집은 가능하나 시스템 상에 입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5년전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성인 배우자에 대해 수집은 가능하던 때보다도 더 후퇴한 것이다. 통계청에서 동성배우자를 ‘오기’로만 보고 집계상 편의를 위해 시스템을 고친 것이 정책적 자료의 엄청난 손실로 이어진 것이다.

인구주택총조사는 조사가 수행되는 시점에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내외국인의 인구와 가구, 주택의 규모와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통계조사다. 법률적 상태가 아닌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조사의 목적 상 인구주택총조사 상 혼인의 개념은 법적인 혼인 상태가 아닌 사실혼 상태 역시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법률 상 동성혼이 가능한지 여부와 상관 없이 동성부부들도 조사의 혼인의 개념상 부부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시스템 상으로는 외국에서 법률혼을 한 내외국인 동성부부도,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고 있는 동성부부도, 자신들의 가족상태를 정확히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는 인구주택총조사의 목적 중 하나인 가구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중대한 오류이므로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

비혈연동거인에 대한 예시로 “고용인, 하숙인 등”만을 언급하고 있는 선택지 역시 변화하는 가족다양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비혈연동거가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생활동반자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지 이미 수년이 흘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연인 등 혈연가족이 아닌 이들과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지만, 인구주택총조사의 해당 선택지는 국가가 여전히 이러한 생활동반자 관계에 대한 인지조차 제대로 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중대한 흠결을 안고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인구주택총조사는 시민들의 삶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수립되는 인구와 가구에 관한 정책과 제도 역시도 이러한 흠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조사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는 인구와 가구에 대한 통계를 가질 기회를 다시 인구주택총조사가 시행될 5년 뒤로 유예 해야 한다.

얼마 전 종료된 일본의 ‘국세조사’는 인터넷, 우편, 직접 제출의 전수조사로 진행되었는데 많은 동성부부들이 가구주와 배우자로서 응답을 하였다. 이 자료의 내검과정 이후 활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 (U.S. Census Bureau)은 미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기 훨씬 이전인 1990년부터 인구총조사에 가구주와 동거인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범주로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Unmarried partner)’를 추가하였고, 동거인의 성별과 상관없이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동거 동성커플의 현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구동향조사(Current Population Survey)와 소득 및 프로그램 참여조사(Survey of Income and Program Participation)에도 1995년과 1996년 각각 같은 문항이 추가되어 동거 동성커플의 인구사회학적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통계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삶에 대해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와 정책을 구성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통계 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에는 동성부부가 없다.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통계조사 과정에서 응답 자체를 막았기 때문이다. ‘내일의 변화는 당신의 이야기로부터’ ‘국민대표로 말해주세요’라는 인구주택총조사의 슬로건이 무색하다.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인구주택총조사 화면 앞에서 동성부부들은 또 한번 절망한다. 이 사라진 목소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통계청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조사의 주관기관들은 정책의 기반이 되는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2020. 10. 16.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