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가족의 탄생 #9>
크리스챤 퀴어, 사랑에 눈뜨다 – 퀴어 커플 '무밍+K'의 이야기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2006년 5월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로부터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2006년 가족구성권연구모임부터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에 이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의 출범, 그리고 최근 동성혼 불복 소송에 따른 심리까지 험난하지만 다부지게 계속돼 왔죠.
그럼에도 ‘종북게이’, ‘골수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혐오가 판치는 게 현실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원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은 좌초됐으며, 한 지자체의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가시화를 통한 존재 드러내기와 당연한 권리 주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에 친구사이에서는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요구에 앞장서는 가구넷과 함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당사자 연재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9번째 이야기는 크리스챤 퀴어로서 당당한 사랑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꿈꾸는 퀴어 커플, '무밍+K'의 이야기입니다!
시끌시끌했던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다. 국민이 선택한 새로운 리더이기에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받고 뉴스거리가 되는 요즘, 그래도 정권 교체 후 무언가 해보려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달갑지 않았다. 유세 과정에서 불거진 동성애 논란, 동성혼 반대 천명, 거기에 성소수자 활동가 연행사건 등이 저릿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수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하루아침에 변하겠냐만, 성소수자 이슈만큼 더디고 어렵게 보이는 것도 없다. 『2016년 국민인권의식조사(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여전히 국민의 절반은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이러다 인권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 싶다. 육군참모총장의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지시로 인해 어느 대위가 구속된 사건을 접하면서 아직도 ‘이게 나라냐’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이런 차별과 혐오에는 항상 보수 기독교의 손이 뻗쳐있다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문제의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한국기독군인연합회의 회장을 맡은 인물로 알려졌고,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등은 이번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사건에 지지성명을 냈다. 과연 뭇 기독교는 영원한 성소수자의 무덤일까. 여기, 크리스챤 퀴어로서 당당히 사랑을 나누는 커플이 있다. 그것도 사람 찾기 힘들고 성소수자 친화 교회 찾기는 더 어렵다는 비수도권 지방에 거주하는 두 사람의 초대를 받아, 한껏 기대를 품으며 9번째 가족/공동체인 무밍+K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간만에 미세먼지도 걷힌 맑은 하늘이 함께한 가운데, 기차에 몸을 싣고 부푼 마음으로 내린 곳에 그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이 커플, 정말 많이 닮았다. 친자매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서글서글한 인상에 동그란 안경, 뽀얀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그런 소리는 많이 들어요. 저도 처음엔 신기했죠. [웃음] 같이 살다보니 더 닮게 되는 것 같아요. 솔롱고스에서 활동하고 있고 대학생인 K예요. | K
이하동문. [웃음] 아, 저는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 어제 퇴사한 무밍입니다. 8살 어린 K랑 같이 가족으로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 무밍
처음 소개를 부탁드렸을 때부터 나온 말이 ‘가족으로서’라니. 두 사람의 관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연재기획을 접하고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는 말 또한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끈끈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엄청 오랫동안 함께 한 것 같은데, 사귄지 이제 600일이 넘었단다. 역시 연애에 있어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지금까지를 돌아보니 어떤지 살포시 물어보았다.
뭔가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봐온 시간들이었죠. [웃음] 처음엔 교회에서 만났어요. 저는 그 당시 기독교를 되게 싫어했는데, 영어도 공부하고 봉사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혹했던 거죠. 처음 전도 당했을 때 뭔가 낚였다는 기분이 들어서 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또 너무 잘해줘서 양심에 찔렸어요. 밥도 사주고 과제도 도와주고 하니 어떻게 나갈 수 있겠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되니 제 리더였던 무밍이랑 엄마와 딸 사이처럼 된 거죠. 그러고는 제가 확 꼬셨어요. | K
제가 소속된 대학교 내 기독교 동아리 선교모임에 전도를 해서 만나게 됐어요. K가 제 팔로워여서 둘이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냈죠. 자연스럽게 자취하는 K 집에 놀러가고 하면서 정 들었는데, 특별한 느낌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스킨십을 되게 자연스럽게 했는데 그게 참 편했고, 나를 많이 좋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직장 다닐 때는 비오거나 그러면 우산 씌워준다고 마중도 나와주고 그랬었거든요. | 무밍
누군가가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감정이 자신을 확 눈뜨게 했다는 무밍의 고백에서 무언가 풋풋한 설렘이 느껴진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레즈비언으로서 본인의 정체성을 자각한 K와는 달리, 무밍은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그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 붙들었을까.
저는 그 당시 성 정체성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 사람들처럼 살겠지’ 하고 받아들이고 살았어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처음엔 거부하고 엄청 욕했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다녔던 교회 교단은 엄청 폐쇄적이고 동성애를 반대했던 거예요. 그러다가 실제로 퀴어인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이고, 교회에서 배운 대로 말하다보니 내재적인 호모포비아의 모습을 드러냈었죠. 그런데 만나보니 이상한 게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 무밍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자각하기 이전에 누군가를 한 인격체로서 좋아하게 된 마음을 그 누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나러 갈 때면 예쁜 원피스를 입게 됐다는 감정이, 이제는 동성 연인과 삶을 나누며 본인의 젠더에 대한 고민과 배움의 욕구에까지 다다랐다는 말이 흠뻑 와닿았다.
게다가 타이밍까지 딱 들어맞았다고 하니, 어찌 아니 좋을쏘냐.
저는 반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었거든요. 그러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다 정리하고 난 다음에 무밍을 만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좀 많이 노련했죠. 요즘에는 안 먹히긴 해요. [웃음] | K
서로가 어떤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어도, 거기에 신앙관마저 달랐음에도, 결국 인연으로 이어져 연인이 된 스토리는 무언가 신기함을 넘어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은 기독교 신앙의 지극히 근본적인 부분, 즉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몸소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 보면서 퀴어에 대한 이해도 갖게 됐고, 보수 기독교의 동성애 혐오 관련해서도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보게 된 뒤로는 생각들을 좀 정리하게 됐어요. 처음엔 같이 회개하러 가자고 했을 정도였거든요. [웃음]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다보니까 제가 받은 기도 응답은, 이방인들에게 문을 열어줄 때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유대인들이 먹으면 안 되는 동물들을 세 번 먹으라고 하시는데 베드로가 거부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주: 사도행전 4:9~16) 왜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더럽다고 정죄하면서 멀리하는지에 대해 생각나게 해주셨고, 그때 저의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확 받아들이게 됐어요. 책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도 도움이 됐구요. 아직은 Q(퀘스처너리)이지만 지금도 만족해요. | 무밍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집 안의 모습
이처럼 언니-동생으로서의 만남에서 엄마-딸 같은 사이로, 이제는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두 사람의 끊임없는 관계맺음이 참 재밌게 느껴졌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부단히도 아끼고 위하며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외모도 닮고 가치관도 맞춰가는 두 사람은 어떻게 사랑을 꽃피웠을지 궁금했다.
먹는 거 좋아해서 많이 먹으러 다녔어요. 극장 데이트도 영화 보는 목적이 반, 팝콘 먹으러 간 게 반이죠. 여자들은 길거리에서 손잡는 것도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손잡고 다녀요. | K
처음에 길 걸어갈 때 손가락 깍지 끼는 건 좀 어색했었거든요. 근데 차세기연(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 분들이랑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내가 뭘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웃음] 그때 이후로 좀 자유로워졌던 것 같아요. 술 마시는 것도 차세기연 덕분에 풀어졌어요. 전에는 K한테 먹지 말라고 엄청 했었거든요. 보수 기독교 교리만 따랐던 거죠. | 무밍
두 사람이 느낀 변화는 비단 관계뿐만이 아니다. K는 수많은 연애 중 지금의 연애가 가장 오래가고 있고, 동거도 처음이다. 본인에게 세심하게 신경써주고, 맛집 다니는 걸 좋아하며, 같이 헌혈하며 받은 영화티켓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서로 비슷한 걸 보면 무밍이 특별할 법도 하다.
그 전 연애는 다 되게 빨리 끝났는데, 확실히 옛날이랑은 다르죠. 이제는 뭔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느낌이에요. 결합이나 유대감 같은 거라고 할까요? 마치 애완견이 집에서 주인만 기다리듯이 무밍이 저를 항상 기다려주는 기분이 들어요. | K
▲두 사람이 함께 먹은 맛있는 음식 사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니 더 자주 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두 말할 필요 없다. 그러기에 동거 또한 연애 초반의 당연한 선택이었고, 원가족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게 됐다. 원룸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독립공간이 있는 곳을 구하기까지, 서로 간의 배려와 노력이 없었다면 잦은 싸움에 지쳤을 것이다.
좁은 집에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그렇게 둘이 거의 붙어 지냈어요. 지금은 투룸이라서 K가 제일 좋아하는 건 저랑 따로 자는 거예요. 제가 좀 코를 골아서요. 아, 그리고 K에게 따로 공간을 줄 테니 거긴 마음대로 하고 공동공간은 깨끗이 쓰자고 했는데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빨래도 잘 안 걷으려고 그래요. 이런 걸로 티격태격하긴 하죠. 지금은 제가 이 더러움에 동화된 것 같아요. [웃음] | 무밍
안 치워도 뭐가 어디 있는지 잘 찾고, 빨래 개고 꺼내 입는 자체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요. [웃음] 저도 학교 끝나면 대부분 바로 집으로 오고, 친구를 만날 때도 집으로 불러서 만나곤 했어요. 예전 무밍이 소개해준 기독교 동아리 친구들이라 둘 다 아는 경우가 더러 있거든요. 친구들이 오는 날에는 미리 서로 연락해서 부랴부랴 치워놓곤 했죠. 덕분에 다른 친구들이 전혀 의심하지는 않았어요. | K
어찌 보면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한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는 경험은 연습할 수 없는 것이기에, 두 사람의 좌충우돌 동거기는 그렇게 쭉 계속되고 있다. 생활비를 나눠 내는 것부터 가사분담, 누군가를 초대할 때 대처방법, 부부싸움 잘 하는 법 등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스스로 해내야하는 것들 투성이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배어 나왔다고 하니 참 다행이다.
차라리 둘 사이의 문제는 둘이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원가족에게는 애인을 선후배 룸메이트로 소개하는 것부터 부모님이 혹시나 오실까봐 눈치 보는 부분, 거기에 원하는 짝을 만나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것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핏줄로 이어진 혈연관계에서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들 얘기하지만, 그 정도가 어디까지이며 본인이 감당할 몫은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하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본가 있을 때 매일 들들 볶고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외동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올해 5월말부터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가능하다는데 번호도 바꾸고 성도 엄마 성으로 하고 얼굴도 성형하고 개명도 할까 생각까지 했죠. 엄마랑은 괜찮은데, 아직 커밍아웃은 못했지만 제가 직장을 잡으면 터뜨리고 도망갈까 하고 있어요. [웃음] | K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내려가는데, 그렇게 불편하거나 하진 않아요. 다만 8살 어린 애인(남자친구)이 있다고 하니 나이 차이도 걱정하시고, 군대 얘기도 하셔서 군 면제 받았다고 하는 등 점점 시나리오를 쓰고 있죠. 이번에 영화 『런던 프라이드』를 보면서 나도 용기를 내볼까, 그래서 언젠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참, 그 전에 한번은 남동생이 제가 누군가랑 연애를 안 하니까 ‘누나 혹시 L이냐’고 물어보긴 했어요. 그 당시엔 제가 퀴어인 줄 모르는 상태여서 ‘뭔 소리여’라고 답했죠. 자기는 별로 신경 안 쓰지만 가족 중에만 없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씁쓸하네요. [웃음] | 무밍
원가족과의 이런 부딪치는 일들이 늘면서 둘 사이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동거를 하게 된 후에는 따로 약속 잡지 않아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편안함이 더해져, 근 1년 반 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며 성장하게 됐다는 말이 절실히 동감됐다.
함께 사니 뭔가 삶의 일부가 되는 느낌?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혼자 살면 그것대로 편하겠지만요. | K
가끔은 제가 같이 있으니까 K가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못 누리는 건 아닌지 생각하기도 해요. | 무밍
아냐 그렇지 않아. 지금 충분히 좋아요. 그리고 어차피 학교 과제가 많아서 정신없어요. 지금도 과제가 5개예요. [웃음] | K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며 순간순간을 즐겼지만 두 사람에게는 무언가 아쉬움이 조금씩 생겼다. 지방에 있어서 갈 곳이 많지 않다는 안타까움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다는 허전함이 겹친 탓일 것이다. 아직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자신의 실체를 고백하기엔 조심스러운 입장에서, 응어리진 마음을 풀 곳이 필요했고 그것은 운명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를 갔었는데, 한 쪽에 무지개 깃발이 보이는 거예요. 무밍한테 ‘저기 무지개 깃발 있다!’라고 외쳤는데, 잠깐 사이 안 보이더라구요. 알고 보니 그게 솔롱고스 깃발이었죠. | K
안지 얼마 안 되긴 했는데 그래도 그 이후로 조금 나아졌어요. 그 전엔 진짜 둘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무밍
중학생 때부터 정체화했지만 어떻게 사람들을 만날지 몰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전전했다는 K와, 본인의 성 정체성/성적 지향에 대해 자각조차 못한 상황에서 연인을 통해 이제야 눈뜨게 된 무밍은 그렇게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주: 솔롱고스는 몽골에서 우리나라를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는 용어다.)를 찾게 됐다.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 회원모임 웹자보
이번 인터뷰도 솔롱고스 통해 요청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운영자님이 저희 커플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하더라구요. 올해는 함께 퀴어문화축제도 한 번 참여해보고 싶어요.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요. 빨리 타투를 해야겠네요. | 무밍
아무래도 소통이 많이 되는 게 제일 좋아요. 사실 전에 다른 단체에 나갔다가 데인 적이 있어서 좀 주저했거든요. 그래서 무밍에게 ‘내가 먼저 들어가서 간을 볼 테니 괜찮다 싶으면 들어와’라고 했죠. [웃음] 결국엔 한 달 차이로 가입을 했어요. 저는 저희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모임으로 생각했는데, 얼마 전 A대위 구속사건 때 투쟁하는 걸 보면서 과격한 면도 있구나 싶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이는데, 횟수가 적어서 아쉬워요. | K
처음 접하는 커뮤니티 활동이라, 두 사람은 본인의 욕구와 단체의 지향점을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K는 신학에 관심이 많고, 무밍은 퀴어의 세계를 좀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만남을 통한 소소한 일상 나눔과 이러한 인터뷰 참여 등이 두 사람 사이를 넘어 다함께 어울려 사는 연대의 디딤돌이 되리라고 믿는다.
아직 가입한지 얼마 안돼서 일단은 적응하고 스터디 참여 중이에요. ‘퀴어이론 스터디’라고 관련논문 책 보고 있는데 어렵더라구요. 제가 이렇게 몰랐나 하는 느낌이죠. 그래서 좀 더 쉬운 걸로 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솔롱고스 모임은 구글이랑 인권재단 사람 쪽에서 지원을 받아 활동에 탄력이 붙었다고 해요. 굿즈도 만들 예정이고 최근 만든 리플릿도 배치한다네요. 사실 필요로 느끼는 건 크리스챤이다 보니까 차세기연도 있는데, 거리가 있어서 쉽게 참여하지 못하는 건 아쉬워요. 예배도 같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찾기가 어렵잖아요. 크리스챤인데 퀴어인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 무밍
솔롱고스 내에서 ‘정체성과 종교의 화합’ 등 복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퀴어퍼레이드도 참여하고 싶은데 극보수 사람들이 있을까봐 걱정되기는 해요. 지방에 성소수자 인권모임이 많이 없는데, 그래도 솔롱고스가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전에는 소외감도 느끼고 했거든요. 차세기연 모임 갔다가 대전 왔을 때 한동안은 우울했어요. 왜 여기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솔롱고스에도 일반 교회 다니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분한테 대전에 퀴어 프렌들리한 교회 세울 거라고 하니까 그럼 다니겠다고 하더라구요. [웃음] 교회 테러 당할까봐 무섭기는 하지만요. | K
보수 기독교 세력화의 힘과 아직 부족한 구성원으로 인한 인권활동의 어려움을 점점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한 사람의 소망을 모아 손을 맞잡고 관계를 확장하며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금 다니는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가 없어서 ‘저희 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어떤 학생의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솔롱고스 연결해드리기도 했어요. 그 분이 학교 내 동아리를 만들어주었으면 해요. | K
얼마 전 솔롱고스 회원모임에서 <반폭력 반성폭력>에 대해 강의를 들었었는데, 강사가 자세히 보니 고등학교 동창인 거예요. 이렇게 이런 자리에서 만날 줄 꿈에도 몰랐거든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는데 아무튼 세상 참 좁다고 느꼈어요. 한편으로는 뜻 깊은 곳에서 보니 기분 좋기도 했구요. 앞으로도 누군가를 만날지 궁금해요. | 무밍
▲솔롱고스 회원모임 중 <반폭력 반성폭력> 강의모습 ⓒ솔롱고스 페이스북
그렇게 성소수자로 지방에 살면서 무언가를 해본다는 게 참 쉽지 않은 걸 실감하니, K는 앞으로에 대한 고민도 더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신학에 관심이 있어서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며 퀴어신학을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인데, 신입학을 할지 편입을 할지 아니면 대학원을 갈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 성소수자 친화적인 목사님을 만나볼 생각이다. 비록 교리는 다를지라도 하나님 말씀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이 합쳐지면 분명 뜻이 통할 거라 응원하며, 좀 더 미래에 대한 계획을 들어보았다.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에서도 그렇고 신학적으로 퀴어 이슈에 대해 접근을 하잖아요. 그래서 직접 배운 다음 검증을 하고 싶기도 하고 히브리어 같은 지식이 없으니까 원어 성경도 읽고 해서 어떤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 전공이랑은 많이 다르지만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교회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 K
이전 직장에서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노동착취를 당해 3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지금은 좀 고민 중인 게 충주에서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거든요. 원래 언니가 도와줬었는데 유학가고 싶다고 저보고 내려와서 일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그러면 주말에만 여기 오는데 그게 참 마음에 걸리네요. 암튼 K가 신학 쪽으로 가면 지원도 필요하니까 생각할 수밖에 없죠. | 무밍
각자가 원하는 바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두 사람의 신념이 돋보였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조건을 떠나 애정으로 서로를 품는 가족/공동체가 생생히 빛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은 반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겠다”는 등의 모순된 발언은 국민 중 한 주체인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존재가 부정당하고, 삶 가운데 차별과 혐오를 겪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그래서 소수자인 사람들이 더 힘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희는 소수 중의 소수인 입장이라 더 그렇죠. 솔롱고스에서 한 번은 ‘퀴어들이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얘기도 나왔어요. [웃음] | 무밍
정치인으로서 표를 잃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결국 소신 없는 발언이잖아요. ‘저런 사람에게 대통령을 맡겨도 될까?’라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느낌이에요. | K
성소수자 가족/공동체에 대한 법적 보호와 권리 부여의 문제도 이 나라는 아직 답이 없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혼인 인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고민 중인 반면, 이웃나라 대만은 지난 5월 24일 ‘동성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인권 대통령이 앞장서서 동성혼 법제화 반대를 천명하고, 우리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혼인평등을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당연히 있어요. 수술 같은 거 할 때 가족 동의서 써야하고, 죽기 전 유언장을 써도 원가족이 유류분 신청하면 최소보다 더 뺏길 수 있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법적으로 뭔가 연결고리가 있으면 뺏기지 않고 챙겨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나중에 입양도 계획 중인데 게이랑 위장 결혼해서 애기만 입양하고 찢어질까도 생각해봤어요. [웃음] | K
참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게 슬프네요. 누군가에게 우리 관계를 소개할 때도 ‘룸메이트’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는 현실이잖아요. 어떤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에는 되게 씁쓸했는데 이젠 무뎌져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무뎌지면 안 되는 건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다보니까요. 가족들한테도 언젠가 말하고 싶은데 법적으로 인정이 안 되니까 참 한계가 있죠. 지금 사는 LH주택 같은 경우 법적인 부부가 아니라 지원도 없고 공동명의도 불가능해요. 나라에서 부부에게 주는 혜택들은 하나도 못 받는 거죠. | 무밍
여전히 위장하고, 돌려 말하며, 감추고 살아야하는 현실에 한숨이 나오지만, 언젠가 세상이 변해서 혼인에 대한 법이 만들어진다면 원하는 결혼식 모습도 마음속에 있단다. 빅 픽쳐를 꿈꿀 수 있는 자유는 누구나 있으니까.
저는 번지점프 같이 기념할 만한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하객들도 원하면 같이 번지점프 하고요. [웃음] | 무밍
저는 반대예요. 결혼식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웃음] 기차 한 칸을 통으로 빌려서 친한 하객들을 초대한 다음 진행하는 스몰 웨딩을 꿈꾸고 있어요. | K
삶으로서, 관계로서 존재를 드러내고 권리를 실천하고 있는 커플에게, 성소수자 가족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으로 청했다.
서로가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그걸로 된 거 아닌가요. 오글거려서 그만. 아, 대전에 오면 솔롱고스를 찾아주세요. [웃음] | K
가족이란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실수하고 잘못 해도 항상 내 편인 거죠. 오래도록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활동도 서울에서만 하지 말고 지방에서도 같이 해요. | 무밍
<新 가족의 탄생> 연재 순서
#01 사랑에 차별이 있나요 – 레즈비언 부부 '낮잠과 유다' 이야기
#02 무지갯빛 마음이 모여 사는 곳 – '무지개집' 사람들 이야기
#03 별처럼 반짝이는 인연을 맺다 – 게이 부부 '플플달 제이&크리스' 이야기
#04 닮은 듯 다른, 믿음 안의 사랑 – 퀴어 커플 '도플+갱어' 이야기
#05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산다 –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 이야기
#06 15년의 사랑, 벅차게 Congratulation – 게이 커플 '승정&정남'의 이야기
#07 우리 관계를 반으로 자를 수 있나요 – 레즈비언 커플 '이경과 하나'의 이야기
#08 마음 가는대로, 오늘을 함께하는 두 사람 – 게이 커플 '경태&범석'의 이야기